[취(取)중진담] ② 평화, 천천히 넓어지고 싶은 셀림 (이동화)
마음에 담은 소리/취(取)중진담 2007/08/21 23:10<소리로 만난 사람들 - 취(取)중진담>
운동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87년 6월항쟁과 2000년 총선연대를 목도한 우리 사회는 이들을 몽땅한데 묶어 386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 현재, ‘그때’ ‘거기’에 있지 않았으나 여전히 운동을 해 나가는 젊은 활동가들이 있다. 기존의 관성을 깨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구와 조직/운동내부의 역할과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 모두들 ‘시민운동 위기론’과 ‘87항쟁 20주년’으로 웅성거리는 이 때, 그 흐름에서 조금은 비껴선 채로 새로운 운동의 물길을 찾고자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87년 6월항쟁과 2000년 총선연대를 목도한 우리 사회는 이들을 몽땅한데 묶어 386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 현재, ‘그때’ ‘거기’에 있지 않았으나 여전히 운동을 해 나가는 젊은 활동가들이 있다. 기존의 관성을 깨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욕구와 조직/운동내부의 역할과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 모두들 ‘시민운동 위기론’과 ‘87항쟁 20주년’으로 웅성거리는 이 때, 그 흐름에서 조금은 비껴선 채로 새로운 운동의 물길을 찾고자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본다.
참고 >> 취(取)중진담을 시작하며 2007.8.14
① 알려지지 않은 '고구마'의 행적을 찾아
② 평화, 천천히 넓어지고 싶은 셀림 (이동화)
- <경계를넘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활동가 셀림(이동화) http://blog.ifis.or.kr/iraqpeaceroad
만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만남이 무려 5년만의 재회라는 것을. 한창 이라크통신을 퍼나르고, 가끔씩 메신저로 소식을 주고받고 지내다보니 그렇게 긴 시간 못보고 지낸줄은 생각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 들어선 날 보고 다짜고짜 셀림이 "어~~~ 짱상, 너도 나이먹는다?!" 하고 놀려대는데도 화가 나지 않았다.
셀림, 아니 사실 내게는 그저 이동화란 이름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성공회대 NGO대학원 동기로 처음 만났던 2001년에만 해도 거기에 '셀림'이란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맥주 한잔 먹여놓고는 진짜로 다음날 탈이 나버린 나를 보고 엄청 황당해하던 모습, 스터디 도중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지역 농업의 현실을 놓고 울분을 토하던 모습, 개구쟁이처럼 잘 웃고 의외로 부끄러워하고 작은 일에 기뻐하기도 하던 모습. 그렇게 당시의 이동화는 나 뿐 아니라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도 순수하고 소박하면서도 편한 친구였다.
그런 이동화가 2003년 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 갑자기 이라크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마설마하던 전쟁이 결국 터지는 걸 보고 먹먹한 가슴으로 어쩔 줄 모르던 나에게 이동화의 이라크행은 충격적일 정도로 의외의 행동이었다. 이미 전부터 전쟁을 막겠다고 인간방패로 날아갔던 사람들이 막상 전쟁이 터지자 어쩔 수 없이 돌아오고, 뉴스에서는 연일 죽어나가고 무너져내리는 바그다드의 소식이 전해져오던 그런 때에 대체 무엇을 하겠다고 그곳을 찾아간건지... 이전에 내가 알던 이동화로 치면 그 순수하면서 무모한 성정에 혹시 대책없는 사고를 친 것이 아닐까 싶어 조금은 걱정도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달, 두달.. 또 1년, 2년..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 저곳을 통해 전해오는 소식 속에서 이동화는 무모하지만 단단하고, 폭발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픈 곳을 향해 다가가는 활동가 셀림으로 점점 모습을 바꾸어 갔다. (평화바닥 이라크통신, 셀림블로그) 그리고 다시 어느날, 거기 머물러 영영 안 올 것 같던 친구가 불현듯 돌아왔을 뿐 아니라 민변같은 '제대로 된 조직'에 취직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또다시 패닉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이동화가 셀림이 되기까지, 그 5년동안 있었던 일들을 죄다 물어볼까? 아니, 그저 난데없이 민변에서는 무엇을 하려느냐고, 오랜만의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 우문을 던져볼까? 민망하게도 전쟁과 평화에 대한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어나볼까? 인터뷰를 가는 내내 머리속이 복잡했지만 막상 셀림을 만나고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5년을 뛰어넘고, 나는 그저 밥을 먹으며 개구진 친구의 농담을 받아치기 바쁜 처지가 되고 말았다.
현장에 뛰어들어 그 일부가 되어서만 느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과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 하지만 그 애정이 한쪽으로만 흘러 또 다른 고통을 만들수도 있다는 사실. 셀림은 그런 깨달음으로 이제 좀 더 천천히, 좀 더 넓게 차근차근 가고 싶다고 여러차례 말했다. 비록 마음은 그곳을 달려갈지라도 좀 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해 나가면서 깊이있게 끈기있게,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여정을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두차례의 녹록치 않은 이라크여정과 요르단에서의 공부가 셀림에게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준 모양이다. 운동의 위기며 연대의 한계며 하는 이야기들은 그저 우문이 되고 말 정도로 그렇게 커져있고, 또 그렇게 낮아져있는 셀림과의 만남이 눈물이 날 만큼 반갑고 또 즐거웠다. '먹고 살려고' 얻은 '직장'에서의 앞으로의 활동도 실은 셀림이 말했듯 어디서건 같은 마음으로 만나고, 다듬고,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② 평화, 천천히 넓어지고 싶은 셀림 (이동화)
- <경계를넘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활동가 셀림(이동화) http://blog.ifis.or.kr/iraqpeaceroad
만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만남이 무려 5년만의 재회라는 것을. 한창 이라크통신을 퍼나르고, 가끔씩 메신저로 소식을 주고받고 지내다보니 그렇게 긴 시간 못보고 지낸줄은 생각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 들어선 날 보고 다짜고짜 셀림이 "어~~~ 짱상, 너도 나이먹는다?!" 하고 놀려대는데도 화가 나지 않았다.
셀림, 아니 사실 내게는 그저 이동화란 이름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성공회대 NGO대학원 동기로 처음 만났던 2001년에만 해도 거기에 '셀림'이란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맥주 한잔 먹여놓고는 진짜로 다음날 탈이 나버린 나를 보고 엄청 황당해하던 모습, 스터디 도중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지역 농업의 현실을 놓고 울분을 토하던 모습, 개구쟁이처럼 잘 웃고 의외로 부끄러워하고 작은 일에 기뻐하기도 하던 모습. 그렇게 당시의 이동화는 나 뿐 아니라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도 순수하고 소박하면서도 편한 친구였다.

이라크 친구들과 함께 있는 셀림
하지만 한달, 두달.. 또 1년, 2년..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 저곳을 통해 전해오는 소식 속에서 이동화는 무모하지만 단단하고, 폭발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픈 곳을 향해 다가가는 활동가 셀림으로 점점 모습을 바꾸어 갔다. (평화바닥 이라크통신, 셀림블로그) 그리고 다시 어느날, 거기 머물러 영영 안 올 것 같던 친구가 불현듯 돌아왔을 뿐 아니라 민변같은 '제대로 된 조직'에 취직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또다시 패닉에 빠질수 밖에 없었다.
이동화가 셀림이 되기까지, 그 5년동안 있었던 일들을 죄다 물어볼까? 아니, 그저 난데없이 민변에서는 무엇을 하려느냐고, 오랜만의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 우문을 던져볼까? 민망하게도 전쟁과 평화에 대한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어나볼까? 인터뷰를 가는 내내 머리속이 복잡했지만 막상 셀림을 만나고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5년을 뛰어넘고, 나는 그저 밥을 먹으며 개구진 친구의 농담을 받아치기 바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셀림(이동화)
- 2002년 성남시민모임 상근
- 2003년 생명평화마중물 활동
- 2003년 6월~12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평화 및 교육운동
- 2004년 성공회대 NGO대학원 졸업
- 2004년 5월~9월 이라크 바그다드 체류
- 2004년 11월~12월 46일간 파병연장 반대 국회앞 농성
- 2005~2006 요르단 암만에서 아랍어학연수
- 2006 경계를넘어 활동
- 2007년 6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상근
- 2002년 성남시민모임 상근
- 2003년 생명평화마중물 활동
- 2003년 6월~12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평화 및 교육운동
- 2004년 성공회대 NGO대학원 졸업
- 2004년 5월~9월 이라크 바그다드 체류
- 2004년 11월~12월 46일간 파병연장 반대 국회앞 농성
- 2005~2006 요르단 암만에서 아랍어학연수
- 2006 경계를넘어 활동
- 2007년 6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상근
현장에 뛰어들어 그 일부가 되어서만 느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과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 하지만 그 애정이 한쪽으로만 흘러 또 다른 고통을 만들수도 있다는 사실. 셀림은 그런 깨달음으로 이제 좀 더 천천히, 좀 더 넓게 차근차근 가고 싶다고 여러차례 말했다. 비록 마음은 그곳을 달려갈지라도 좀 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해 나가면서 깊이있게 끈기있게,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여정을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두차례의 녹록치 않은 이라크여정과 요르단에서의 공부가 셀림에게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준 모양이다. 운동의 위기며 연대의 한계며 하는 이야기들은 그저 우문이 되고 말 정도로 그렇게 커져있고, 또 그렇게 낮아져있는 셀림과의 만남이 눈물이 날 만큼 반갑고 또 즐거웠다. '먹고 살려고' 얻은 '직장'에서의 앞으로의 활동도 실은 셀림이 말했듯 어디서건 같은 마음으로 만나고, 다듬고,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이 인터뷰는 'amy 또는 신비'가 다음세대재단 '소리아카이브'에 제공하는 음성기록입니다. 그러니까 이 에피와 소리아카이브 두 곳을 통해 공개되는데요, 개인적으로 다운로드 받으실 수는 있으나 온라인상의 다른 곳으로 가져가실 경우에는 관련 텍스트가 함께 담기는 소리아카이브의 '공유코드'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 문제 같은 건 전혀 아니고, 혹시나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이 개인적인 곤란을 겪으시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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