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강제진압 희생자들을 추모합니다



[세계의 여성활동가⑬] 그들은 우리안에 살아있다 - 레이첼 코리

삽질로 빚은 이야기/세계의 여성활동가 2006/11/29 00:43
환경정의 격월간지 우리와다음(2006년 9/10월호)에 보낸 글입니다. 2004년 여름에 시작하고 무려 2년째 쉬엄쉬엄 진행중이랍니다. 그런데 갈수록 집중도도 성의도 떨어지는거 같아서 너무 송구스럽다는. ㅠ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글도, 말도 아닌 행동일텐데요.

그들은 우리안에 살아있다 - 레이첼 코리
생태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꾼다 - 세계의 여성활동가들 ⑬

2003년 3월은 전세계의 수많은 평화운동가들을 중동으로 결집시킨 격동의 시기였다. 미국의 집요한 위협속에 이라크에서 무언가 사단이 나고 말거라는 우려가 짙어지던 그때, 인간방패라는 이름으로 많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몸으로 전쟁을 막아내겠다며 요르단이며 이라크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즈음, 이라크와 멀지 않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역시 이스라엘의 폭력을 몸으로 막아내던 스물 세 살의 평화운동가 레이첼 코리가 잔인하게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소식은 현장에서 레이첼과 함께 있던 국제연대운동(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 소속 활동가들의 증언을 통해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코리의 죽음은 곧바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면서 극한의 슬픔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말았다.

미국의 평범한 대학 졸업반이던 레이첼은 무슨 이유로 먼 팔레스타인까지 가서, 도착한지 불과 두달이 지나기도 전에 그토록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을까. 당시 현지에서 보낸 그이의 편지를 읽어보면 진실을 목도함으로써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픈, 그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고픈 열정이 깊이 묻어남을 느낄 수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독서도, 회의와 모임에 참가하는 것도, 아무리 많은 말을 듣고 읽어도 이곳의 현실에 대해 나에게 가르쳐줄 수는 없었다고요.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아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심지어 직접 와서 본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일들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경험이 결코 이들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현실'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군대가 비무장 미국 시민에게 총을 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만약 이스라엘 군대가 우물을 파괴하면 생수를 사서 마실 돈이 있고 원한다면 이 땅을 떠날 수도 있겠지요..."

(2003년 2월 7일, 레이첼코리의 이메일 중)

안전핀이 사라진 광기의 시대


실은, 레이첼도 다른 그 누구도 이스라엘군이 비무장 미국 시민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감히 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비폭력 저항운동은 생명을 내건 극히 위험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미국이라는 제국의 시민권,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두 국가권력의 밀월관계 속에서 나름의 안전핀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이첼은 결국 목숨을 잃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남의 땅에 들어와 가옥파괴와 장벽쌓기에 몰두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불도저. 그 앞에서 레이첼은 여러 동료들과 함께 확성기 하나로 비폭력 저항행동을 벌이고 있었다. 불도저 운전사는 활동가들을 향해 모래와 금속 따위를 집어던지다 결국 그대로 레이첼을 깔고 지나가버렸다. 다가오는 불도저를 피하지 않고 맞선 레이첼은 가까이 있던 동료들이 달려갈새도 없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단순한 충돌이 아닌 의도적인 압사였고, 불도저는 다시 후진과 전진을 반복해 남아있던 레이첼의 목숨을 완전히 앗아버리고 말았다.

“만약 이스라엘 군대가 비무장 미국 시민에게 총을 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레이첼이 한 말이 무색하도록, 이 사건은 조용히 묻혀갔다. 이스라엘은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에 대해 책임있는 행동을 하지 않은 채 ‘시위대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난하기에만 급급했고, 수십년 전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유해를 찾겠다고 지금까지도 수색을 멈추지 않는 미국 정부 역시 이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측의 해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스라엘군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전세계의 이목이 침공당한 이라크로 향해간 사이, 다음달인 4월에만도 두 명의 국제연대운동 활동가에게 발포했다. 한 명은 직접적으로 저격을 당했으며, 다른 한 명은 저격수에게 공격당하던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구하던 중이었다. 안전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무책임과 용기의 경계에서

물론 레이첼을 죽인 건 불도저를 운전하던 운전수지 이스라엘이 아니다. 그리고 그 불도저 운전수가 죽인 건 미국이 아니라 스물세살의 열정적인 평화운동가 개인이다. 이 사건의 본질이 분명히 두 권력의 위험한 욕심에 기인하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일임에도. 이렇듯 국가와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과 죄악은 현실 세계에서는 늘 그 모습을 감춘 채 한 개인의 우발적인 행동으로 드러났다 재빨리 사라져버리곤 한다. ‘무책임한 용기’로 인해 죽거나 다친 활동가가 레이첼 뿐만이 아니며, 그나마 외신을 타는 미국 시민인 레이첼과 달리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들은 우리안에 살아 있다"

Carlo Giuliani(1978-2001)
이탈리아 파시스트에 살해당함
- 카를로스 쥴리아니(Carlo Giuliani)는 2001년 이딸리아 제노아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관련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게 살해당함.
Rachel Corrie(1979-2003)
이스라엘 파시스트에 살해당함
- 레이첼 코리(Rachel Corrie)는 2003년 집을 부수는 이스라엘 불도저에 맞서다 살해당함

(출처: www.ifis.or.kr)

하지만 그토록 ‘상상도 못할 절망의 땅’에 다가가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사람. 그 순수한 열정 때문에 짧은 시간, 소리없이 산화해간 레이첼 코리는 이후 오랫동안 진실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살아나고 있다. 곧 이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에도, 또 여전히 진행중인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폭격 상황 속에서도 평화운동가들은 목소리를 내기에 주저하지 않고 있다. 야만이 계속될수록 제2의, 제3의 레이첼 코리가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 안에 살아있다.

2006. 8.

:: 참고자료 ::
레이첼 코리 추모 웹사이트 http://www.rachelcorrie.org
더 가디언 http://www.guardian.co.uk/
지오리포트 http://www.georeport.net
팔레스타인평화연대 http://www.pal.or.kr
경계를넘어 http://www.ifi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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