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하나 추천합니다.
나온컬쳐에서 제작하는 젊고 신선한 연극입니다.
에피소드 가족 여러분들 한번 찾아가서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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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읽는 세상 2
인류 최초의 반전연설, <아가멤논>의 클리템네스라 中
전세계가 전쟁으로 난리다. 사실, 인류 역사상 지구상에서 전쟁의 총성이 멈춘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쟁은 전쟁 그 자체로서 잔인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으로도 그 잔인함의 도가 지나치다. 전쟁은 물리적인 생명이나 영토뿐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사고방식 자체를 송두리째 파괴한다. 아마 우리 한반도도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물론, 전쟁이라는 것이 없다면 가장 좋을 것이고 전쟁 없는 평화가 영구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인간이 불완전한 ‘동물’인 이상 전쟁이라는 것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없다면, 전쟁에는 최소한의 룰이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룰을 깊이 이해하고 숙고해 볼 때 역설적으로 전쟁이라는 것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아이러니컬 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BC 10세기 훨씬 이전에 그리스와 트로이와의 전쟁이 있었다. 흔히 ‘트로이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통해서 신화 시대의 전쟁이라 알려져 왔는데 19세기 후반 독일의 슐레만이라는 학자의 트로이 발굴을 통해서 역사에 편입되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것이 역사상 실재했던 전쟁인지 아닌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실재여부와 상관없이 아이스퀼로스의 희곡 <아가멤논>은 그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딸(이피게니아)을 아르테미스 여신께 제물로 바치고 출정한 그리스연합군은 10년간 트로이와 전쟁을 치룬다. ‘들판에서 이슬을 벗삼아 잠’자면서 싸웠던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 10년간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연극 <아가멤논>에서 클리템네스트라는 남편이자 아르고스의 왕인 아가멤논이 개선하기 전에 시민들을 궁전 앞에 모아놓고 연설을 한다. 나는 이 연설문이 역사상 최초의 ‘반전연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승리한 국가의 퍼스트레이디가 역설하는 반전연설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전쟁의 참상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인간으로서 최소한 지켜야 일종의 룰을 제시한다. (조금 비껴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희랍의 다른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코메디 작품중에 <리시스트라타(Lysistrata)>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인류최초의 ‘반전연극’으로서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다. 내용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남편들을 전장으로 보낸 부인들이 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잠자리를 거부하는 내용의 코메디인데, 최초의 반전연설과 반전연극의 주인공이 모두 여자라는 사실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그 내용을 들어보자.
클리템네스트라
오늘 그리스 군대가 트로이를 점령했습니다. 지금 내 귀에는 함락된 도시에서 들려오는 사나운 울음소리가 느껴져요. 식초와 기름을 한 그릇에 담으면 절대로 섞이지 않죠. 그 둘의 상반된 성질이 서로를 엉켜놓기 때문이죠. 이처럼 운명이 서로 갈린 승자와 패자는 그 목에서 나오는 소리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죠. 여인들은 사랑하는 남편과 형제의 주검 위에 쓰러져 목놓아 울고, 늙은 부모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식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흐느끼겠죠. 패자들의 처절한 울음 소리. 하지만 승자들은 밤새도록 계속된 싸움 때문에 몸은 지치고 배는 굶주렸어도 시내를 활보하며 여기저기서 제멋대로 먹고, 마시고, 훔치고, 강간하고, 파괴를 일삼게 마련이죠. 전에는 들판에서 이슬을 맞으며 추위를 벗삼아 잠들었지만, 이제는 트로이인의 집안에서 보초도 서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으며 단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만일 승자들이 패자들의 수호신과 신전에 경의를 표한다면, 패자가 당한 그 일을 그들 또한 당하지 않을 겁니다. 트로이를 떠나오면서, 승자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금지된 물건들을 훔쳐서는 안됩니다.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갔던 만큼의 거리를 다시 와야 하니까요. 아직도 결승점까지는 반이나 더 남아 있잖아요? 설사 우리의 군대가 신 앞에서 아무런 죄를 짓지 않고 돌아온다 해도, 죽임을 당한 자들의 원한이 그들을 잠 못들게 할겁니다. 그 사이에 새로운 불행이 그들에게 닥치지 않는 다면요. 이게 바로 여자인 내가 하는 말입니다. 결국, 선이 이기게 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모든 값진 것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리템네스트라는 승전국의 왕비이지만 트로이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다. “함락된 도시에서 들려오는 사나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슬퍼하는 그녀는 “식초와 기름을 한 그릇에 담으면 절대로 섞이”지 않는다는 비유를 통해 그들을 자신의 나라로 편입시키거나 동화시키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하긴,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의 상황을 생각하면 클리템네스트라의 생각이 꼭 옳은 것 같지만은 않다. 우리가 몇 십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급속히 미국화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식초와 기름이 섞이는 것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사는 듯한 불편을 느끼고 있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노력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또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형제,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들과 어머니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클리템네스트라는 승전국의 왕비 이전에 인간으로서 점령국의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신의 나라 군인들이 벌일 만행들, “제멋대로 먹고, 마시고, 훔치고, 강간하고, 파괴”하는 행위들이 비윤리적이며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경고한다. 그리고 만약 “패자들의 수호신과 신전에 경의를 표하면 패자가 당한 그 일을 그들 또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점령지를 약탈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그 패전국의 원한에 의해서라도 반드시 보복 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뿐만 아니라 옛날에도 전쟁으로 다른 민족이나 국가를 점령하게 되면 가장 먼저 그 민족, 나라의 문화나 생활양식을 강제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뒤따라갔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관습이나 문화를 어지럽히는 외부세력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한다. 그 작업은 이미 시작 이전부터 불가능하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파괴와 폭력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사실 이러한 것이 물리적인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고 더 폭력적인 것일 수 있다. 한반도 역시 이러한 폭력의 결과로 지금의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돌연변이 상태에 이른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이라크 민족의 개조사업과 약탈의 공사음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미국은 즉시 이 재개발을 중지해야 한다. 어차피 되지도 않는 사업 때문에 지금 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게될 ‘미국인’을 생각해서라도 중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 자의 원환”이 그들을 영원히 “잠못들게 할” 것이고 “새로운 불행”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보복 차원의 문제가 아닌 이 세계가 운행하는 ‘섭리’의 문제인 것이다.
뱀발.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여성들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타>에서도 여성들의 섹스스트라이크를 통해서 전쟁이 멈춰지고, <아가멤논>에서도 “여자인 내가 하는 말”이라고 주장하는 클리템네스트라를 통해 여성이 남성보다 평화적이고 고통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이끌어주면 머슴처럼 남성들은 따라갈 것이다. 진정 평화의 세상이 오길 기대하는 한 무지한 남성의 책임 없는 부탁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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