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밑빠진독상] 천년을 후회했을 천년의 문
2006/03/06 09:00
천년을 후회했을 천년의문저는 두꺼비레터를 통해 밑빠진독상을 비롯한 예산낭비사업의 뒷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하려하면 항상 걱정이 됩니다. 현재도 존재하는 사람들의 실명이 거론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액수가 커질수록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에 말씀드릴 200년 11월에 수여한 천년의문 사업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예산사업은 없다.
예산사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아무도 모르는 예산사업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업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정책적 판단을 해야하고 따라서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관련업계(?)들도 알게 되지요. 더군다나 공개행정이라는 시대적 요구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게 알만 한 사람은 알고 있는 것이 예산사업이고 또한 그 과정에서 문제점도 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내용이 전문적일 경우에는 직접 관련자만이 알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부자 고발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양심적인 문제로 치부해서 사실상 내부자 고발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원리는 “배신을 가능하게”하는 것입니다. 배신하고 신고한 사람에게 죄를 줄여주거나 보상해준다면 부패가 더욱더 힘들어 지겠지요.
그러나 그런 제도를 의도하는 ‘납세자 소송’이 정책결정자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제도로 인식되는 것은 아마도 자신들에게 겨눌 칼날이라고 생각하거나 진정한 예산낭비는 없다고 생각하는 어떤 믿음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두꺼비 9년동안 느낀 점입니다. 그분들은 모든 사업은 이유가 있으므로 예산낭비라고 볼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분야에 있는 사람이 그 분야의 일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아무튼 알만 한 사람은 알고 있었던 천년의문 사업은 관련단체였던 문화연대를 통해서였습니다. 이 단체는 1999년에 시민행동이 창립될 때 거의 동시에 생긴 단체였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문화개혁에 대한 과점에서 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저희와 코드가 맞은 것이 이 사업이었습니다. 결국 문화관련 단체가 가장 문화예산에 대한 내용을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업의 시작은 2000년 새천년을 맞이하여 1999년 4월 발족된 대통령자문기구인 새천년위원회(위원장 : 이어령)부터입니다. 이 위원회는 수백억원을 들여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이 ‘천년의문 건립’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7월에는 재단법인 천년의문이 발족했으며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의 내용은 국가적인 상징 조형물을 만들어 관광명소화 함으로서 국가 이미지제고 및 관광수입증대를 하겠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300억으로 사업비를 책정했다가 사업이 확정되자 550억원으로 예산을 늘렸습니다. 그중에 정부지원은 200억 원으로 잡고 나머지는 기업과 일반시민의 성금과 민자유치 등을 통해 해결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시작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재단법인 천년의문이 설립되는 것과 동시에 사업기간 연장신청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재원조달이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재단은 거의 한푼도 모금하지 못한 상황에서 11월에 일단 설계공모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0년 2월에는 당선작을 발표했습니다.
당선작은 200미터높이의 굴렁쇠모양의 문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어령씨의 아이디어였던 88올림픽의 굴렁쇠가 연상된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각종 기관들에서는 이미 경제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고 문화연대 등의 문화단체들은 이런 발상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상식적으로도 200미터짜리 굴렁쇠모양의 문이 주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문화연대가 처음에 이 문제를 시민행동에 제기한 것은 5월경입니다. 밑빠진 독상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이지요. 하지만 저희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문화연대의 주장에 대해서 대부분 공감은 하지만 밑빠진 독상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죠.
그것은 “가치”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문화적인 가치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밑빠진독상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많은 문화사업이나 환경사업 같은 것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업도 그런 거대 건축물을 짓는 것에 대해서 무조건 찬성하는 많은 시민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었고 돈이 큰 만큼 이해집단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밑빠진독상 후보로 계속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의 신중의견이 계속 제기되어서 4회인 11월에 가서야 시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어 논쟁을 만들다.
이런 신중함속에 상이 결정된 것은 다음해인 2001년도 예산안이 제출되고 그동안 정보공개를 요구한 내용이 입수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부자의 제보도 있었구요.
그 결과 논리의 허점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단 재단에서 주장하는 국민모금의 내용이 비현실적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재단은 500만명이 모금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ARS나 일본인 관광객에게 2000원씩의 모금을 계획하고 있으나 기존의 ARS모금이 수십억원을 넘은 적이 없고 일본관광객에게 모금한다는 것도 매우 비현실적인(심하게 말하면 도대체 말도 안 되는)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은 재단의 이사회회의록에도 ‘명분용’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계획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까 만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문제는 다른 사례에서도 보듯이 관리운영비의 문제도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 수백원의 관리운영비가 소요되는데 재단에서 주장하는 300만 관광객은 당시 관광객이 500만명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현실적이지도 않고 실제로 온다하더라도 운영비에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사업이 될 것이라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그래서 추가자료를 정부에 요구하고 문화관광위의 의원들의 협조도 받고 해서 보충한 후에 밑빠진독상 선정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당시 밑빠진독상 선정위원회의 위원들은 2주에 한번 회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업을 대여섯번은 검토했고 따라서 내용에 대한 숙지가 거의 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이사업의 문제점은 문화적인 가치의 문제와 경제성문제였습니다. 문화적 가치는 이런 거대 건축불이 얼마나 낭비적인가를 문화인들이 논리적인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에 시민행동은 경제성의 허점을 파해친 것입니다. 차라리 문화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라고만 했으면 저희는 계속 고민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승리하기까지 - 시민들의 판단은 현명했다.아무튼 밑빠진독상을 발표했고 당연히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로 저희의 의견을 찬성하는 측과 천년의문을 지지하는 측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이것은 저희에게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무관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니 일단 성공한 셈이지요. 조선일보나 MBC 등은 찬성이었고 경향이나 다른 언론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중립을 지키는 언론들도 있었구요
당시 사업추진측에서 본다면 조용히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좋은데 소란스러워지면 좋을게 없지요. 따라서 11월에 발표한 시상 이후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찬성하는 언론은 언론대로 반대하는 언론은 언론대로 상당한 보도가 계속되었습니다. 당연히 국민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때 저희가 한 언론 대응은 저희반대 언론에 대해서도 매우 열심히 작업을 하는 전략이었습니다. 피하지 않구요
한편으로 국회에서는 11월과 12월 예산심의에서 이사업이 논란으로 떠오르고 삭감이 주장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2얼에는 새천년위원회 위원장이었고 문화계의 실력자였던 이어령씨가 모방송 라디오에 출연하여 방어논리를 폈고 건축가 정기용씨와 저도 그에 대한 반론을 폈습니다. 일개 시민단체 상근자와 논쟁해야하는 수모를 감수하게 된셈이지요.
그리고 시민들릐 의견을 그런데 저는 그때 시민의식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경제도 어려운데 이무슨 사업이냐 하는 반문화적인 배경의 의견이 다수일줄 예산했습니다. 그런데 11명중에 중립한명을 빼놓고 7명정도가 반대를 했는데 반대의 이유가 대부분 기존문화재를 보존 한다던가 소프트웨어를 확충하기위한 대안중심의 의견이었습니다. 반대로 찬성하는 분들은 시민단체에 대한 못마땅한 시각이 반영되는 등 비논리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작은 표본으로 판단하기는 그렇지만 생각과는 달리 시민들의 생각도 많이 발전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이 반응을 보인 것에서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어령씨는 “내가 꼭 그런 큰문을 만들라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라고 한발을 빼고 토론은 종결되었습니다.
마침내 중단된 - 천년을 후회했을 천년의 문사업
2001년이 되어서도 논쟁의 격화되자 재단은 비로소 대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천사모(천년의문건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것도 만들어서 서명작업을 벌이고 시민행동에 밑빠진독상 선정경위와 자료, 회의 참석자의 명단 및 회의록 등 세세한 자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대응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행동과 문화연대측도 각계에 대한 설명회 기자회견 등으로 최대의 문화현안으로 부각시키고 3월 20일에는 87명의 건축계, 180여명의 문화계․학회 등이 포함된 ‘천년의문 건립반대 500인 선언’을 발표하는 등 막바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재단의 대응은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3월28일에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이 당시 문화관광부 김한길 장관에게 이사업의 중단을 재가함으로서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꼭 대통령이 결단해야하는가는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장관으로도 결정할 수 없는 정권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는 공동정권이었기 때문 이었고 이어령씨 등이 관련된 자민련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점이었죠.
이미 사업규모는 처음의 300억원이 890억으로 증가해 있었고 내부자의 제보에 따르면 1400억원까지 계획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업이 진행되면서 더 늘어나겠죠. 그러면 이미 들인 돈인 7억여원은 포기하더라도 52억을 환수 조치했습니다. 물론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분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6억원 가량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사회곳곳의 권력들 - 전문가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저는 두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곳곳에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500인서명이 참여했던 건축가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이름을 빼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처음에 정의감에 분노하셨던 분들이 막상 일이 커지면서 업계에서 일종의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처지가 딱하여 빼 드릴려고까지 내부에서 논의되었습니다만 다행히 상황이 빨리 종료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돈 있는 곳에 권력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둘째는 전문가들의 양심입니다. 모든 큰 예산사업은 타당성검토니 경제성평가니 하는 과정에 전문가들의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문가들이 사실상 그 사업의 정당성을 만들어 주는 셈이 된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가정과 변명의 논리를 내세우지만 곡학아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문가들도 몰랐다면 그것도 문제고 알았다면 더욱 문제가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의 관련자 명단들을 보면 아직도 문화권력 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착찹합니다.
7만5천명이 넘는 교수님들과 20여만이 넘는 전문가들 중에 그런 분들은 소수이겠지만 그 소수의 사례가 전체의 권위를 깍아내리게 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혹 소신이 있어 그런 주장을 했다면 그점을 명확히 그리고 훗날에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필요할겁니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전문가의 양심을 믿고 또 틀리더라도 보다 건설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1조가 넘는 돈이 들어가는 시화호에 대해서도 그 어떤 전문가의 반성의 목소리를 들은 바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분야는 심하게 말해서 ‘학계’가 아니라 ‘업계’라는 말을 듣게 될 수 도 있습니다.
마치며 - 가치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
내용이 길어지니 마지막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에게는 밑빠진독상 중에 이사업이 제일 어려운 사업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것입니다. 다행히 경제성문제라는 부분이 상의 한쪽 근거가 되어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과제로 남습니다.
제대로 돈을 쓰는 문제와 그 사업자체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다른 측면입니다. 모든 사업은 논리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예산낭비도 논리적인 흐름 속에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높은 수준의 예산감시운동은 바로 이가치문제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경우는 국방비냐 복지냐 하는 부분들이겠지요. 따라서 대립되는 측면도 많지만 시민사회에서 이 ‘가치’에 대한 부분에 대한 논의와 합의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은 초기단계이지만 여성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성인지적 예산’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무엇이 여성예산인가 그리고 어떤 것이 바람직한 예산인가를 판단하는 ‘가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하지만 아직 다른 분야에서는 이런 정도로까지 논의나 합의가 진척되고 있지 못합니다. 앞으로 예산감시운동이 이런 부분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보다 진전된 사회의 인식의 발전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앞당길 거라고 봅니다.
또 하나 논란이 있는 사업은 강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를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의 안보나 시급성이 요구되는 사업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갈수록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이 많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일단 시작하고 나서 논의한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업을 합의 속에 시작한다면 그것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여 사회자본이 늘리는 것이며 완전 중단되더라도 논의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얻게 되리라고 봅니다.
무조건 시작하고 나중에는 들인 돈 때문에 계속해야한다는 논리는 결국 ‘예산낭비업자’들만을 살찌울 뿐 모든 국민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감히 주장합니다.
아무튼 이런 모든 문제속에서도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자칫 ‘천년을 후회했을 천년의문’사업은 중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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