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고혜경 선생님이 추천해주셨는데,

몇 개월이 지난 요즘에야 손에 쥐고 읽어보고 있다.

모든 것은 다 타이밍이 있나보다.

그 때 읽었으면 지금보다는 대충 읽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넘 재미나다.

책에 풍덩 빠지고 싶어서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빨리 시간이 지나서

한가위 명절때 여유롭게 읽어보고 싶다.


첫 시작은 바흐와 제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자 : "스승님,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음정을 생각해내실 수 있습니까?"

바흐 : "그건 전혀 힘든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운 음정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지 않도록 참는 것이 더 힘들지"


옳은 것을 찾아낼려고 애쓰고,

혹여 부족한 것이 아닌가,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비판을 했을 때,

무엇 하나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추천사에서 고혜경 박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창조장애'에 대해 서술한다.


'너는 천재적이지 못해'

'전문성이 떨어지잖아'

'위대한 작품들을 봐. 근처에도 못 미쳐'

'그저 평범할 뿐이야'

'전문교육도 안 받았잖아'

'살기도 바쁜데'


창조란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무생물의 돌에서 생명을 지닌 이미지를 만드는

이미 돌 속에 들어 있던 이미지를 불러내어 그 이미지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표면의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냄으로써 태초부터 돌 안에 감춰져 있던 모습을 드러냈다는

미켈란젤로의 조각관처럼,

표면 아래 감춰진 것을 더 깊고 크게 보는 능력이

시민교육을 고민하는 나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떤 옳은 것을 가르쳐주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혀 있는

권리의식, 관계로 풀어나가는 감각들을

'그저 드러내 주는 것'말이다.

풀뿌리는 잘고 수많은 뿌리들의 이미지도 있지만,

뿌리의 힘을 믿었을 때에만

시민의 목소리로 시민의 이야기를 하는 운동을 펼쳐낼 수 있듯이 말이다.


'그저 드러내 주기'만 하면 되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내가 기대했던 것,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축제가 몇일 진행될지, 얼마나 크게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저마다 춤과 노래와 시로 내면의 기쁨, 순수 열정, 빠져든 삼매를 풀어낸다면

세상은 넘치는 끼로 채워진 푸짐한 잔치마당'의 형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까르르 웃어제끼는 잔치마당에서 즉흥연주를 벌이듯 춤을 추는 사람들이야 말로

권력자들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무적함대가 아닐까?



p.s.>

저 위쪽, 받침대에 몸을 눕힌

미켈란젤로

쥐처럼 조용조용

그의 손이 앞뒤로 움직이네.

물 위의 소금쟁이처럼

그의 마음은 고요 위를 떠다니네.


                             -시인 예이츠-


« 1 2 3 4 5 .. 58 »

두 나무가 손을 꼬옥 잡고 세상을 배워나가려고 합니다. 그늘 아래 쉬어가는 나그네들에게서요... by 자유로운 연리지

카테고리

전체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