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 잎사귀처럼 - 은유로서의 과학

2005/09/01 09:00


은유로서의 과학 - 다나 J.해러웨이와 유전자학 / 다나 J. 해러웨이,「한장의 잎사귀처럼」, 갈무리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 워싱턴을 배경으로, 6년 동안 살인사건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치안이 완벽하게 구현된 세계를 보여준다. 이른바 프리-크라임 Pre-crime 시스템은 미래에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까지 예지자의 비전을 통해 미리 예측해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프리-크라임 특수경찰은 ‘미래’의 범죄자들을 범죄발생 이전에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2054년에 미래를 예지하는 시스템의 개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혹자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단지 SF적 상상력 그자체에 불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필립 K.딕은 이것이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프리-크라임 시스템은 놀라울 만큼 게놈 프로젝트나 유전자정보은행의 아이디어와 근본적으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지도는 인간게놈이라는 소위 정보의 바다에서 유전자 수천 개의 위치를 확인하고,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 변이를 찾아낼 수 있다는 과학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 보인다. 심장병, 간질환, 비만, 정신병, 그 외 유전성 질환, 심지어는 범죄성향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질환들은 ‘발생하기 이전’에 유발하는 질병유전자가 무엇인지를 파악함으로서 통제가능하다는 사고는 실상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에 예측하여 체포하는 ‘프리-크라임’과 완전히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이처럼 유전자를 일종의 청사진으로 간주하며 유전자가 모든 것을 만든다는 물신적 사고에 대해 다나 해러웨이는 이를 ‘유전자 물신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녀는 유전자를 ‘물체’로 간주하는 생명공학의 초유전적 이데올로기가 건강산업, 의약, 농업관련 산업을 포함한 강력한 산업분야에서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를 끌어들이는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와 긴밀한 역할을 맺고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또한, 그와 동시에 그/녀는 좀더 급진적인 인식론적 비전을 보여주는데 유전자가 ‘물체’가 아니라 관계성이라는 장에 있는 매듭이라고 주장한다. 일종의 기초단위인 세포 역시 구획된 생물학적 영역을 확보하는 독립적 ‘물체’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영역이며, 유전자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장의 매듭으로 계승을 자리매김하고(locate) 실제적인 것으로 만드는(substantize) 구체화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유전자는 ‘물질적’이자 동시에 ‘기호적’인 실재물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자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이라는 과학에 대한 그/녀의 인식론적 입장을 약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논리실증주의, 포퍼, 쿤, 라카토스, 파이어아벤트, 라우든으로까지 이어지는 70년대 과학철학은 자신의 모든 노력을 과학방법론, 즉 과학/비과학의 구획가능선을 설정하는 것에 바쳤다. 과학이 아닌 것, 즉 점성술과 심령술과 같은 이론들을 ‘사이비과학’으로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함으로서 과학은 자신을 물질적 자연법칙에 대한 가장 객관적 이론가로서 제시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은 당연히 ‘과학’의 장소인 ‘실험실’과 ‘비과학’의 장소인 ‘사회’를 구분하여 사회와 과학은 아무런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인식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과학자가 생체실험을 하는 나치라고 할지라도 그의 과학적 결과물은 그의 정치적 입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사회구성주의’와 ‘구성주의’가 등장함으로서 기존에 전제된 ‘과학/사회’의 이분법을 의문시하는 인식론들이 나타하기 시작했는데, 해러웨이의 인식론은 이러한 흐름과 미묘하게 공명하고 있다.

해러웨이는 단호하게 “생물학은 담론이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과학은 물질적인 세계에 대한 법칙의 탐구이자 기술이라는 고전적인 과학에 대한 인식론에서 벗어나, 과학 역시 동시대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하나의 담론이라고 본다. 생물학이라는 과학 역시 단순히 객관적인 과학이 아니라 노동, 자본, 생산성과 같은 현대사회의 체계 속에 갇혀있고, 다양한 생명현상들을 가시화하는 하나의 담론으로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유전자가 물질적-기호적 실재물이라는 주장은 유기체인 인간이 물질적, 기호학적으로 살며 과거의 역사의 영향선상에 놓여있는 존재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러웨이의 입장은 ‘자연문화 natureculture’라는 개념에서 매우 집약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녀는 자연/문화를 이분화하여 물질적 자연을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상징적 문화를 기호학적 탐구대상으로 구분하는 것을 부정한다. 해러웨이는 이 두 개의 영역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고 두 개의 영역이 사실은 하나라고, 생물학은 일종의 은유 혹은 설화라고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질병의 위협은 건강의 주요 구성요소들 중 하나이다.” “질병은 관계이다” “이 세계에 설화 밖이라는 곳은 없다”와 같은 도발적인 주장은 이러한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지도와 같은 현대 생명공학의 시도에 대해 해러웨이의 인식론이 보여주는 것은 과학/사회, 자연/문화의 이분법을 벗어나야 한다는 시도 이상의 것이다. 그/녀는 유전자지도와 같은 현대 생명공학의 문제에 대해, 단순히 ‘과학자의 윤리적 위치’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며 이미 비판적 효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전히 유전자지도를 과학자들이 사회적 영향에서 자유롭게 실험실에서 생산해내는 물질적 자연에 대한 ‘객관적 지식’으로, 그러한 ‘지식의 활용’에 개입하는 정부, 기업과 같은 사회행위자들과 과학자들간의 ‘윤리적 전제’의 문제로 이분화하는 방식의 접근이 갖는 핵심적인 문제는 유전자지도라는 지식의 형태가 근거로 삼는 인식론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해러웨이의 비판은 유전자를 어떠한 현상으로 과학적 담론 상에서 가시화하느냐의 문제는 객관적 진리탐구의 영역만이 아닌 은유와 설화의 문제 또는 단순한 은유 그 이상, 즉 그자체가 세계가 아닌 담론으로서의 생물학이 갖는 인식론의 영역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해러웨이는 매우 드물게, 급진적인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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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limpsest 2005/09/01 09:0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네트워커 9월호에 보낸 글립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2. 산그늘 2005/09/05 09:0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유전자의 관계성이라... 신영복교수님의 관계론 강의가 생각나네요
    뭐 우리나라에서는 유전자 연구에대해 윤리적 비판의 접근조차 부재해 보이지만
    너무나도 뻔한 비판처럼 들리는 윤리적 접근대신 근본적인 질문이 신선하네요

  3. 신비 2005/09/06 09:0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하나 원초적인 질문이 있어요.
    어렵게 느껴지는 '그/녀'라는 기호를 굳이 쓰는 것보다
    우리말에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성별이 담긴 그 표현을 쓰지 않고
    다양한 대명사를 때에 따라 활용하는 방법을 쓰는게 어떤지 말이에요.
    젊은 연구자들이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4. palimpsest 2005/09/06 09:0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신비] 다양한 대명사를 때에 따라 활용하자는 얘기에는 물론 찬성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녀'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는 것은 이분법 사이의 접면을 탐색하는
    해러웨이를 지칭하기 대명사로서, 일종의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임을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저는 단지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하기 부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왜냐면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heshe. s/he등의 다양한 대명사를 개발했지만
    그들도 이러한 용어들에 대해 별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제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고.
    이 표현 역시 이러한 어려움들에 상응/대응하는 다양한 전략 중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5. 다중지성의 정원 2010/04/01 00:03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즐거운 지식, 공통의 삶, 다중의 지성 공간’을 내걸고 2007년 10월 5일 개원한 <다중지성의 정원>(이하 다지원)은 ‘대항대학(원), 대항학교, 대항학원’을 만들며 상호교육하고 토론하는 상설적 자기교육기관입니다. 자세한 취지문은 웹페이지(http://daziwon.net)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학(STS) 젠더 연구자인 켈러, 하딩과 해러웨이의 사유를 따라 젠더와 과학기술의 관계를 살펴보는 강좌 <켈러, 하딩, 해러웨이의 시선으로 과학기술과 젠더 들여다보기) 강좌가 오는 4월 1일 목요일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과학] 켈러, 하딩, 해러웨이의 시선으로 과학기술과 젠더 들여다보기 ::::::::::::

    강사 조아라
    개강 2010년 4월 1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7시30분 (8강, 104,000원)

    강좌취지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망에서 젠더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젠더는 어떤 방식으로 이 관계망에 개입하고 개입되어 있을까? 이 물음에 켈러(Evelyn Fox Keller), 하딩(Sandra Harding),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중요한 인식론적 분석틀을 제공한다. 따라서 본 강의에서는 이 세 명의 STS(과학기술학) 젠더연구자의 관점을 따라가면서,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1강 켈러가 본 베이컨의 과학 : 지배와 복종의 기술
    2강 켈러가 본 근대 과학시기 주체와 객체의 이분화
    3강 하딩이 본 과학에서의 페미니스트 인식론
    4강 하딩의 “강한 객관성”
    5강 하딩이 본 전 지구적 페미니즘에서의 과학문제
    6강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
    7강 헤러웨이의 겸손한_목격자@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8강 와이즈먼의 해러웨이 비판 : 은유와 물질성

    참고문헌
    『과학과 젠더 : 성별과 과학에 대한 재반성』, 이블린 폭스 켈러 지음, 민경숙·이현주 옮김, 동문선, 1996.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샌드라 하딩 지음, 조주현 옮김, 나남, 2009.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다나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동문선. 2002.
    『겸손한_목격자@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 페미니즘과 기술과학』, 다나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7.
    『테크노페미니즘: 여성, 과학기술고 새롭게 만나다』, 주디 와이즈먼 지음, 박진희·이현숙 옮김, 궁리, 2009.

    강사소개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협동과정 과학기술사회학 전공, 박사수료. 서강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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