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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3 장자연 리스트와 신뢰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1)

혼자생각해본 UCC

장자연 리스트와 신뢰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http://blog.daum.net/openuser

[강장묵 칼럼]



장자연 리스트와 신뢰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고인의 넋을 빌며


‘고 장자연씨의 고통이 멀리서나마 느껴진 까닭일까?’ 마음이 아려온다. 동시에 ‘고인의 리스트’에 등재된 영광의 거물(?)들이 경험했을 놀람과 당황은 어떠했을까? 더러 억울한 누명이라고 분노를 삭일지도 모른다. 더러 오리발을 준비 중인 거물들은 무매한 네티즌과 남 이야기 콩 볶듯 하는 국민성을 탓할지 모른다. 아니 이참에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묻히거나’, ‘냄비처럼 끓다 조용해지면’ 사이버 죄, 하나 더 개발하려고 벼를 수도 있다.



#빠른 속도와 느린 사고


‘장자연 리스트’의 진위를 이 자리를 빌려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거물들로부터 포퓰리즘(?)으로 찍힌 누리꾼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네트워크 시대에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더딘 거물의 사고와 온/오프라인의 차이가 불러올 위기와 도전을 기술을 배경으로 말하려 한다.



#네트워크 사회


일찍이 카스텔(M. Castells)은 현 시대를 ‘네트워크 사회’라고 명명하고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전 분야가 네트워크를 통해 구성되고 움직인다고 주장했다(Castells, 2003). 요사이 웹 2.0 시대가 전개되면서 인터넷을 통한 각종 콘텐츠에 상호연결성이 활성화되었다. 이용자가 ‘소비와 제작을 동시에 하는 프로슈머’로 참여하는 웹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참여·공유·개방의 정신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매체적으로 기존 미디어에서 단독으로 다루던 문자(책, 잡지), 소리(라디오), 영상(방송) 등의 정보를 복합적으로 감자 으깨듯이 매쉬업(mashup)된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서는 개인, 소수, 다수, 집단, 국가 간의 동시적·비동시적 연결, 일대일·다대다 소통, 즉각적 반응을 구하는 실시간·시차를 가지는 비동시적 방식 등이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네트워크 사회를 사는 이도, 바라보는 이도 모두 복잡하다. 이런 까닭에 네트워크 시대의 분권화된 모습은 자칫 혼란스러운 무질서를 연상케 한다.



#미완의 소통

사뭇 ‘촛불 시민운동’을 초기 주도한 스마트한 소녀, ‘황우석 사태’를 촉발시킨 ‘브릭’의 젊은 과학도, 연예계의 사생활을 정확히 꿰뚫는 팬클럽 등 메신저, 블로그, 휴대폰, 게시판으로 무장한 네트워크는 강해 보인다. 그러함에도 ‘악플과 명예훼손’, ‘유언비어와 인터넷 마녀사냥’, ‘사이버 스토킹과 프라이버시 침해’, ‘저작권과 음란’ 등 위법 행위도 만만치 않게 드러난다.

과연 이런 역기능들은 네트워크 시대로 가는 필요악인가? 정부의 강력한 법집행으로 통제될 수 있는가? 시민은 자율규제를 통한 가상공간의 자치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소통 기술은 그 눈부신 기능적 놀라움 만큼이나 풀어야 할 난제를 가득 남겨주었다. 인식론적 한계이든, 기술 수용과 활용의 미성숙이든, 커뮤니케이션의 양적 확장은 커뮤니케이션의 질적 변화를 일으키기엔 2% 부족해 보인다.



#2%를 채우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현실 세계가 신뢰를 얻지 못할 때, 디지털 해방구를 찾으려는 몸부림에 시선을 두고 싶다. 진실을 밝힌다는 명목이든,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시민의 결의이든, 평범한 사람도 스폰서 없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열망이든, 가상공간으로의 영토 확장은 초기 청교도처럼 반듯한 내적 원리와 사회구성 질서를 요청하게 된다. 온라인 세대의 문화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공간이 되기 위한 전제로서 콘텐츠의 신뢰확보는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가치가 된지 오래이다.



#아! 독타 세대여

‘장자연 리스트’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은 오랜 기간 인터넷 정보 검색을 일상으로 해온 경험에 의존하여 어떤 정보를 신뢰하고, 누구 말에 개연성이 있는지를 오랜 경험(더러 낚기거나 알바에 속은 과정을 통해)을 바탕으로 ‘직감적’으로 또는 ‘집단지성’으로 알아낸다.

반면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생의 중반에서 자기 삶에 받아들여야 했던 ‘독수리타법 세대’에게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의 느슨한 유대(weak tie)보다 학·혈·연의 끈적끈적한 술자리 유대에 왠지 마음이 간다. 자연스럽게 정보의 신뢰성도 강력한 유대(strong tie)가 작동하는 얼큰한 술자리를 선호할 듯싶다.



#신뢰성을 보장하는 관계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는 관계란 느슨한 익명의 관계보다는 끈끈한 실명의 관계일 때 믿을만하다. 이런 사고는 ‘악플의 문제’를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의 연동 즉, '일일평균 이용자수가 10만 명 이상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자가 게시판을 설치·운영하려는 경우에는, 이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해야 하고, 그 정보는 6개월간 보관해야 한다.'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복잡계를 통제한다는 이런 단순무식한 사고는 전 세계적 흐름을 혼자 거스르는 결과를 낳았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알바생에게 낚일 수 있다는 염려는 ‘인터넷 언론사가 선거운동기간 중 당해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글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는 실명확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실명인증을 받은 자가 글을 게시한 경우 당해 인터넷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실명인증' 표시가 나타나도록 하고, 표시가 없는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글이 게시된 경우 지체 없이 삭제한다.’라는 공직선거법으로 구체화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웹 2.0 기술로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이변을 지켜보며, 남의 나라 이야기를 부러워해야만 했다.

지금도 국민을 모신다는 각 분야의 거물들은 국민들이 소통하는 공간에 대한 신뢰에 황색 안경을 끼고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기 일쑤이다.



#소통의 길을 열어주어야

현재 거물들의 염려(?)덕분에 더러 통찰력 없는 식자들의 주장 때문에, 인터넷에 악플과 근거없는 소문을 잡는 방법으로 금칙어, 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와 실명제, 형벌추가 등 제도적 조치가 취해졌다. 덕분에 ‘콘텐츠가 돌지 않으니 깨끗해진 것 같다.’는 착시현상이 보일 뿐, 오히려 소통의 길은 좁아들고 더불어 인터넷 산업의 경쟁력은 하향곡선을 그린다.

애초 인터넷은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여 콘텐츠를 소통해야했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수의 시민들이 검증할 수 있는 소통의 열린 구조를 형성해 해결해야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소통의 연결고리를 끊거나 소통의 책임을 묻기에 바빴다. 지금 경찰은 그 많은 콘텐츠, 행위 들을 현행 법에 따라 실효성 있게 구별할 수 있을까?



#확산된 수렴 원리를 따라야 할 때


세상의 하층 구조를 다듬는 기술이 변했다. 콘텐츠가 소통됨으로 자연스럽게 검증받을 수 있는 개방형 구조, 소셜 관계를 통한 감시 구조, 다양한 채널로 걸러진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물론 네트워크란 미국의 구글과 야후처럼 몇몇 포털로 수렴되는 현상도 나타나지만, 그 수렴은 유튜브(youtube), 플리커(flickr), 마이스페이스(myspace), 트위터(twitter), 슬라이드쉐어(slideshare), 아마존(amazon) 등 여러 허브(hub)를 경유한 ‘확산된 수렴’이다.

반면 어느 때부터 굴절과 편향이 심해진 우리나라의 네트워크란 네이버와 다음으로 수렴되는 현상은 같지만, 자사 블로그와 카페에서 걸러진 ‘독점적 수렴’일뿐이다.

물론 구글과 야후가 다수의 자회사를 거느리지만, 새로운 철학과 원리로 서비스하는 벤쳐와 공생하는 소통 구조는 다채로운 여과 기능을 제공한다. 다양한 채널로 확산된 허브들이 필터링한 콘텐츠가 포털로 수렴될 때, 자연스러운 신뢰성의 문제가 담보되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주민등록번호체제가 없다. 인터넷에서 소셜시큐리티넘버(SSN)를 요구하는 경우도 없다.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고 싶어 하지 않는 KKK단의 알바생들이 득실거렸음에도, 오히려 사용자 손수 제작 콘텐츠(UCC, 미국에서는 UGC로 더욱 알려짐)의 열풍은 멈추지 않았다. 인터넷 자정 작용의 소통 원리를 발견하고 국가와 기업이 합심하여 노력한 때문이다. 그 노력은 지금처럼 법을 하나 더 만들어내는 단순한 접근이 아니라, 소통의 판을 넓혀 알바생도 특정 집단도 쉽게 인터넷을 조작할 수 없도록 거대한 콘텐츠의 물꼬를 열어주는 일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장묵강장묵 열린사용자위원회 위원(세종대 전자정보공과대학 교수)

* 이 글은 Daum 열린사용자위원회 3기 위원으로 활동하시는 강장묵님의 칼럼입니다.
* 이 글은 Daum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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