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면 다 아는 만화책이죠. 개인적으로 고백하나 하자면.. 전... 만화책이 좋아요. ㅎ 슬램덩크의 작가가 요사이 연재하는 만화책입니다. 내용은 일본인이 너무 사랑한다는 미야모토 무사시에 관한 내용입니다. 혹자는 이 책을 읽고는 역시나 여성은 남성들의 주변인 역할만 한다고 하시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다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만화의 등장인물들이 추구하는 바가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세계관과 추구하는 바 모두가 '검'과 '성공'에 눈이 맞춰 져 있으므로 모든 상황과 심리는 그것에 쏠려 있습니다. 슬프지만 모든 몸과 마음이 한 곳에만 집중된다면 그렇지 않은건 주변인이 될 수 밖엔 없을 것입니다.

주인공 미야모토무사시
" 인간 군상 "
만화책 한 권에 수 많은 인간 군상을 느낀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전 솔직히 느꼈습니다. 특히 수 많은 남자들의 성향이 이 한권에 나온다고 말입니다. 성공(검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사무라이가 권력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던 시대에는 '무도인'으로서의 성장은 '성공'과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과 그에 대한 열정과 비애를 느꼈습니다.
배가본드 안에서 어떤이는 검으로 성장하고 어떤이는 그것을 이용해서 잔꾀를 부리고 어떤이는 더 강한자에게 패하고 삶의 허무함을 느끼고, 어떤이는 상처만 입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런 성향의 사람들과 그런 삶의 과정이 현실에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천하무적'이 되고자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만화책 전반에 걸쳐 무사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천하 무적이 무엇이냐? ' '강함이란 무엇인가 ?' 하는. 만화책에서 정확히 어떤 장면에서 누가 이야기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하무적'은 한낱 말 뿐이라고 말합니다. 무사시는 강해지고 싶어하고 그 강함은 완전무결한 어떤 지향점입니다. 단순히 싸움을 잘한다거나 하는 유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무사시는 동네 양아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문과 질문에 답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시작되었던 여행이 진정한 삶에 대한 지향점을 찾는 여행으로 바뀝니다. 책 안에서도 무사시는 나를 괴롭히는 것은 더이상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무라이를 만나고 '도刀'에서 시작해서 그 도를 뛰어넘어 '도(道)'를 이룬 스승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화책은 가르쳐 줍니다. 한 낱 말 뿐인 강함이라는 것에 현혹되었을 뿐이며, 그렇게 자신이 이루고 싶어하던 천하무적은 '나' 뿐이 없는 유치한 자기 과시욕이었다고.
만화책에서 자신의 인생을 검에 건 한 사내가 이야기합니다. 처음엔 강해져서 누군가 나를 봐주길 원했고, 천하무적도 그랬다고. 뭐든 그 한 가운데에 '나'라는 것이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따르고 목숨을 건 검에 '나'이외엔 없었다고. 그렇다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도(칼로 상징되는 무엇..)'는 그렇게 작은것이었나? 라구요.
불교적 내용
이런 모든 이야기는 사실 불교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무사시가 처음 인슌과 대결에서 패한 후, 잘 알고 지내던 스님은 말합니다. 한 낱 나뭇잎에 마음이 사로잡히면 숲을 볼 수 없다고. 진정한 '본다'는 것은 마음의 사로잡힘이 없이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 무사시가 자신의 모든 욕망이 자기 과시욕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그 깊이는 다르지만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지와 무아에 관한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그 시대가 선불교가 자리잡힌 시대였기에 그럴 수도 있구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대학때 잠깐 교양으로 들었던 불교철학의 체계적이해라는 수업 내용을 대입해 보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차지하고라고 사는 방식의 문제가 가장 재밌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자라나 함께 커온 무사시와 친구(이름이 기억안남)는 완전 다른 인생을 삽니다. 무사시는 자신을 깨뜨리고 진정한 무도인의 길을 가는 반면 '성공'을 외치던 친구는 성공의 환상에 사로잡혀 잔꾀를 부리며 성공한 이들을 이용해 먹으며 삽니다. 그리고 무사시와의 간격을 느낄 때마다 불안해 합니다.
만화책 안에서 그 친구는
' 다케조(무사시의 본명.. 근데 맞나? ;;) 너와나는 친구냐? 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자꾸 조바심이 나고 불안해 지기만 한는구나..'라고 독백합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솔직히 이 친구의 심정도 절절히 느꼈습니다. 버러지만도 못한 인생이라느니,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말입니다.
그 많은 비애를 안고 세상은 '이룬이'와 이루지 못한 이'로 나뉘는가 봅니다. 이룬자는 여유롭고 자유롭습니다. 물론 그 '진정한'것을 이루는게 중요합니다. 진정한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한 이는 여전히 먹고 먹히고, 쫒고 쫒기는 삶의 나선에서 내려오지 못한 이 입니다.
" 명시지와 암묵지 "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하다가 합니다. 이 만화책에서 "인에이"는 천재 제자 인슌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지만, 가르치지 못한게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를 죽을 지도 모르는 무사시와의 대결로 내몰고, 거기다 무사시를 단련시킵니다.
저번주인가 저번 한겨레21에서 명시지의 사회 한국, 암묵지의 사회 일본이라는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암묵지는 겉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속에 품고 있는 뜻같은 약간은 관념적이고 정신적인 무엇을 말합니다. 이 만화책에서는 단적인 그것의 차이를 좀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기술과 정신을 합한 장인정신의 최상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느낌입니다.
인에이가 주지 못한 그것은 보이지 않는 암묵지 입니다. 그것을 넘겨주고 알려주는 것, 그것이 늙은 스승에게 남은 마지막 과제라고 말합니다. 그 스승의 마음도 사실 꽤나 감동적이었습니다만..^^
명시지와 암묵지 무엇이 좋을 것일까요? 암묵지는 많은 것을 개인적인 문제로 두는 것 같습니다.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라던가하는. 그리고 암묵지를 많이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개인의 노력이나 정신력의 문제라는 것을 이용해서 기득권의 세력을 정당화 하려는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여기는 것도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말로 분노를 터뜨리는 것을 본 적도 있고. 암묵지는 무겁지만 답답합니다. 그리고 변화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떤 면에서는 극한의 인내심을 시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학습지를 팔면서 느낀 것도 하나 있습니다. 영업하는 사람들 중에 꽤나 이런이야기를 합니다. '못사는 집은 못사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이런 이야기 들음 누군가는 분명 분노할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그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만들어가는 삶에 대한 반성과 인식없이 많은 분노를 전체에 터뜨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회를 원망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래서 결국은 근본적인 변화를 자신의 인생에 못가져오는 경우가 많고, 그 원망으로 점점 더 삶이 왜곡되어 가는 것도 봤습니다.
암묵지와 명시지도 둘 다 장단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정신적인 문제가 '이상'으로 치부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물려주는 뜻이 없을 것입니다. 벌써부터도 사회의 많은 것들이 알맹이도 없이 그저 아이콘이나 이미지처럼 떠돈다고 느끼는 것은 저만이 그런건가요?
'진정함'에 대한 고민없이 잘 사는 것만 추구하는 것은 배가본드에서 무사시와 그 친구의 삶을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였습니다. 무거워 죽을 것 같은 의문과 짐을 지고 떠난 무사시는 25권에서는 가벼워지고, 가볍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친구는 25권에서 왜곡된 무거운 인생을 삽니다. 그 근본적인 차이는 삶에 대한 자세의 차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의 인생도 말해줍니다. 못사는 사람에게는 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토록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소중한 것입니다. 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만화책이 재밌는 이유는 그 미친듯이 잘그리는 그림에 있습니다. 진짜 잘그립니다. 위에 그림만봐도 알겠죠? 슬램덩크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작가는 참 성장만화를 잘 그립니다. 그것도 절절히 와닿게.. " 난 천재니까"를 외치며 끝난 강백호가 하는 말은 사실 작가가 하는 말이 아닐까요? ㅋ 정말 " 넌 만화책에 있어서 천재니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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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