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나 달려왔던 걸까.
흙먼지 사이로 끝없이 펼쳐졌을 고원길.
2004년 10월 1일, 세계의 지붕 티벳고원에 서다.
=>알리 가는 길
"너 이렇게 입고 가면 티벳 가서 얼어죽어. 알리가 얼마나 추운데."
"그래요? 그래도 잠바 입고 가면 괜찮지 않을까요?"
"안돼. 스웨터 없니? 없으면 오늘 시장 가서 사. 알리 가면 옷값이 무척 비싸다구."
예청 군민초대소 아주머니가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예청에서 보낸 시간만 벌써 5일째다. 알리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
한달에 세번 길이 열리는 예청-알리 구간. '신장공로(新藏公路)'로 불리는 서부티벳 입경루트다.
=>티벳으로 들어가는 루트
예청을 마지막으로 그동안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던 내 여정이 동쪽으로 '턴~' 하게 된다. 뜨거운 사막바람을 뒤로 하고 이제는 고원으로 간다.

예청의 '금요일 모스크 (Friday Mosque)'.
여자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곳인지, 우리가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보자 험상궂은 얼굴의 위구르 남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화를 내며 나가라고 한다.
=>예청 - 서부티벳으로 가는 길목

예청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영공리에 있는 군민초대소 4인실.
예청에 도착한 첫날,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걸어오는 우리를 보고 초대소 앞에 있던 남자들 몇몇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한다.
"일본인인 것 같지?"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초대소 안으로 들어가자 그 중 한 사람이 재빨리 들어와서 슥박계를 기록한다.
"아저씨들 좀전에 우리 얘기한 거 맞죠?"
얼굴 빤히 쳐다보며 중국어로 톡 쏘는 내 모습에 그가 오히려 더 당황해한다.
6인실이 10원, 4인실이 15원이란다. 무조건 싼 방으로 달라고 하자 그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10원짜리 방은 썩 좋지가 못해. 15원짜리 방이 훨씬 좋을텐데."
그래도 계속해서 10원짜리 방으로 달라고 하자 일단 그가 따라와보라며 방을 보여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방은 건물 가장 뒷편에 있는 가장 후진 방이다. 한눈에 봐도 딱히 마음이 내키는 조건은 아니다. 그래서 15원짜리 방도 같이 보기로 했다.
건물 2층에 있는 4인실은 훨씬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다. 혼쾌히 수락을 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숙박계를 적었다.
현지인들의 말을 일단은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보는 내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선량한 얼굴의 초대소 주인은 진심으로 우리를 생각해서 15원짜리 방을 권해준 것인데, 외국인들에게는 좀처럼 싼 방을 내주려 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습성에 그동안 내가 많이 질렸던 모양이다.
여행을 하면, 특히나 외국에서 여행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모든 사람들을 '비딱하게' 보는 습관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일종의 생존전략이고, 낯선 곳에서 혼자 다니려면 그 정도의 의심은 필수적이기도 하지만,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많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나쁜 사람'의 말 한마디에 울고 좌절을 하다가도 '좋은 사람'의 말 한마디에 웃고 위로를 받는 것이 여행자다.
=>영공리 군민초대소
"너 체크아웃을 너무 일찍 했어. 버스는 저녁 늦게서야 출발을 하는데, 낮에 그렇게 급하게 체크아웃할 필요가 없잖아. 오후에 방에서 쉴 수도 있었을텐데."
고지식하게도 낮 12시 이전에 정확하게 체크아웃을 해버린 나를 보고 주인 아저씨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내 딴에는 숙소 규정대로 제 시간에 방을 비운 것인데, 사실 그날도 몸상태가 무척 안좋았다.
알리까지 약 36시간이 걸린다.
태어나서 이렇게 긴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낸 적이 없기에 당연히 걱정이 앞선다.
거기다 고산병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 않다.
"티벳 가나요?"
"네."
"그럼 홍경천 필요 없어요. 차라리 포도당을 사가세요."
낮에 시내 약국에 가서 고산병약 '홍경천'을 달라고 했더니 약사가 시큰둥하게 이렇게 대꾸를 하는 바람에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포도당을 살 바에는 음료수나 넉넉히 사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며칠간 한산하던 초대소 앞에 사람들이 많다.
중국인들 틈에 외국인 여행자들도 몇몇 섞여 있다. 일본인 1명, 프랑스인 1명,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한국인 6명.
승객이 버스 정원의 절반도 안되는 터라 상단침대는 앞의 두 자리만 빼고 모두 빈 채로 알리까지 갔다.
표를 살 때 중간자리로 좌석번호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먼저 탄 사람이 임자라고, 결국 뒤에서 두번째 자리를 맡았다.
하단침대여서 그나마 '점프'를 덜 하면서 갔지, 상단침대였으면 가는 도중 수십번은 더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버스 출발 시간은 북경시간으로 저녁 8시.
배낭은 침칸에 실었고, 필요한 비상식량과 작은 크로스백만 가지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급하게 내려서 초대소로 뛰어갔다.
"짜이찌엔!"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지.
며칠간 세심하게 신경써준 그들의 친절이 고마웠는데.
밤이 되니까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침대마다 구비된 두꺼운 이불도 소용이 없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온몸이 얼어붙는다.
영공리에 5일간 머물면서 체력을 비축하기는 커녕 배탈이 나서 고생을 좀 했다. 출발당일에도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영 컨디션 제로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고원.
이런 것이 바로 '고원'이구나.
깨질 듯한 쪽빛 하늘에 황토색 비포장 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끝없는 고원.
아무리 정신이 혼미해도 카메라 셔터 누르는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태어나서 이보다 더 장엄한 자연풍경은 보지 못했다.
오후가 되자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정신이 멍해진다.
'고소증'.
영공리에서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로부터 홍경천 한병을 얻어마셨는데 솔직히 심리적인 안정 말고는 특별한 효과를 잘 모르겠다.
여하튼 괴롭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버스가 섰다.
후틀후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중심을 잡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앞자리에 있는 중국인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투로 한마디 건넨다.
"야~ 체력 좋은데? (고원)반응이 없네???"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였던 걸까.
하긴, 사색이 되어 버스에서 내리기는 커녕 거의 혼절해서 누워 있는 몇몇 중국인들에 비하면 그래도 몸을 일으켜 버스에서 내리고 다시 탈 정도니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걱정했던 것에 비해 비교적 잘 견디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내 자신이 기특해진다^^;
=>알리 가는 길
앞자리 상단침대에 있던 일본 남자아이는 고소증에 정신을 잃고 2층 침대에서 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떨어지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후 며칠간 그 친구의 이마에 남아 있던 상처에 그날의 고생길이 생각나곤 했다.

예청-알리 구간을 다니는 침대버스.
예청에서 알리로 이어지는 길은 세계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도로 중 하나라고 한다.
예청에서 서쪽으로 갈리는 길은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로, 4800m의 Khunjerab Pass를 넘는다.
예청-알리 구간에서는 해발 5000m를 넘는 곳이 몇군데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트럭히치로만 갈 수 있었던 이 '지옥길'을 지금은 공공교통수단으로 갈 수가 있다.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인데, 티벳이 점점 '가기 쉬운' 곳이 되어가는 만큼 티벳 본연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때만 해도 쌩쌩한 얼굴로 앞에 있던 한국인 여행자한테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 몇시간 후에는 고소증으로 멍해진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이 고통(?)이 어서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려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