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2)

2004/03/30 09:00
올해 초, 국내 한 대기업 '사내 감청'에 대한 소문이 들으셨나요? 소문에 따르면, 이 기업에서 업무 비리에 대해 감사를 하는 과정에서 메신저와 이메일에 대한 대대적 감청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업무 비리가 얼마나 밝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애꿎게도(?) 수많은 사내 불륜 커플이 드러나고 말았다는 것이죠. 소문이 조직 내에 퍼지면서 회사 분위기도 안 좋아지구요. 당황한 회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60여명에 대한 대대적 해고를 감행했다고 하지요.

이제 이런 일은 IT시대 직장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업무만 디지털화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커뮤니케이션도 디지털화되었기 때문이죠.

편리함과 간소함의 이면에는, 사회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암울한 이슈가 숨어 있습니다. PC를 통해 업무를 하고 의사 소통을 하는 한, 비밀은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행동은 트래킹되고 모든 표현은 저장됩니다. 직장인은 그야말로 '파놉티콘(벤덤이 주장한 원형감옥)' 속의 죄인 신세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웬만한 기업에서 이메일 감청은 일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메신저를 통한 메시지도 걸러지고 저장된다고 합니다. 일부 기업은 더 나아가 노골적인 '감시' 기제를 사무실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출입증의 기록을 통해 직원 개개인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은 이제 애교입니다. 한 인터넷 기업은 근태 관리를 명분으로 사무실에 CC TV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이 기업 사무실에는 "서비스 오픈 D-10"라고 쓰인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었다고 하지요.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모델로 만든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골적이지요.

언제나 연락 가능한 휴대폰 등의 통신기기는 퇴근 이후 직장인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지하철에서 버스 안에서도 동문회 회식 자리에서도, 직장 업무는 계속됩니다. 해외 로밍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지역의 장벽도 사라졌으니, 도망갈 방도는 더욱 없습니다. 네트워크와 통신혁명이 "편안하게 집에서 근무"를 가능케 한다는 <재택근무>의 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과 같은 생산성과 무한 경쟁 상황에서 편안한 <재택근무>를 허용할 만한 기업은 얼마나 되겠느냐는 푸념이 흘러나옵니다.

직장인의 삶은 고달파지고 있습니다.

기업의 비밀을 보호하고 고용인의 근태를 관리하려는 기업의 의지가 정당한 만큼, 사적인 삶을 보장받고 신뢰에 기반해서 고용 계약이 운영되기 원하는 직장인도 정당합니다. <틈새가 없는 관리>를 가능케한 정보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고용 계약 관계에서 양측이 존중해야 하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episode.or.kr/yonnie41/trackback/13

  1. 바람이 2004/03/31 09:0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미국의 경우 직장인의 시간중 50%는 재택이라는데. 그 시간동안 어떤 웹사이트를 드나드는지 체크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경우가 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 업무효율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물론 근무시간에 근무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점점 무서워지는건 ㅠ.ㅠ

Write a comment


직장인(1)

2004/03/24 09:00
직장생활이 올해로 10년입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1994년과 비교해 보면, 저를 둘러싼 풍경이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신문사가 첫 직장이었던 저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원고지에 검은 볼펜으로 기사 작성 연습을 했습ㄴ다. 데스크는 빨간색 볼펜으로 원고를 수정해 주었죠.

수습이 끝나자 최신 정보 통신 기기가 지급되었습니다. 무게 3KG에 육박하는 386 노트북, 삐삐와 휴대폰 등이요. 휴대폰은 한손에 꼭 쥐기 어려운 거대한 크기에 무게도 대단했는데, 배터리가 오래 가지 않아서 발신 용도로만 사용했어요. 삐삐가 울리면, 휴대폰을 켜고 전화를 거는 식이었죠. 그래도 그런 최신 기기로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시기라 어깨가 으쓱했었죠.

그렇지만, 노트북과 PC는 "기사 작성"이라는 특수 업무에만 사용되는 기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업무는 전화나 맞대면을 통해 이루어졌고, 출장, 구입, 시말서 등의 공식적 업무는 서면으로 품의서를 제출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저는 PC통신 접속을 할 줄 아는 젊은 기자 중의 한 명이었는데, 97년쯤 되자 인터넷을 시도하는 동료들도 생겨났습니다. '기자'라는 업종은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정보사냥꾼"이기에 PC통신이나 인터넷을 업무에 활용할 여지가 컸습니다. 아마 편집국이 아닌 사무실에서는 사정이 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이 때의 인터넷은 사무실 내 업무보다는 사무실 밖 여가를 활용하기 위한 수단이었죠.

사무용 소프트웨어는 또다른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아래한글이나 MS워드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사무직 노동자의 업무 깊숙히 파고 들었고, 엑셀, 파워포인트 등을 활용한 업무 범위도 점점 커졌습니다. 특히,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사무실의 패러다임을 확 바꿨습니다. 사업 주체들간의 거리감을 확 줄여주고, 의사 소통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졌지요. 특히 해외 기업과의 협조가 잦은 회사의 경우에는 절대적인 비용 절감, 시간 절감에 감탄했습니다. 고로, 이메일을 통해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처리하는 회사가 많아진 것은 당연했습니다. 당시에는 '스팸'이 없어서, 어쩌다 광고 메일이 하나 도착하면 반가워했던 기억도 납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회사가 인터넷과 PC소프트웨어를 통해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사각사각" 볼펜 소리였던 사무실 소음이 "따그닥"거리는 키보드 자판 소리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이메일 또는 인트라 넷 게시판이 품의서, 제안서를 대신했습니다. 온라인에서 결재 받고, 온라인에서 결제 하고, 온라인으로 보고 하고, 온라인으로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직장 내 업무는 한결 간편해지고 빨라졌습니다. 서류들을 여기저기 쌓아놓을 필요도 없어졌지요. (그렇다고 사무실이 깨끗해진 것은 아니겠지만요..^^)

직장인의 삶은 10년 전에 비해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업도 직장인도 IT와 인터넷 발전에 따른 많은 긍정적 효과를 체험하고 있지만, 직장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억압과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게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계속)



※ 오랫동안 잠적했었네요~ 직장인 신세라 쉽지 가 않네용.. ㅋㅋㅋ
top

Trackback Address :: http://episode.or.kr/yonnie41/trackback/12

  1. 바람이 2004/03/25 09:0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10년의 세월이..바람처럼^^ 흘렀군요. 1994년이면 제가 새내기로 입학하던 때인데.
    강산이 변하는 10년이라더니.. 글을 읽고 보니. 정말 혁신의 시대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입니다.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Write a comment


여성선거구제,'진의를 묻는다'

2004/02/23 09:00
이승연씨의 누드 프로젝트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년간 열려온 수요일 대사관 집회에 단 한번이라도 참여한 사람이었으면 모르겠지만..."이라고 얘기했다죠..

조아신님과 바람이님이 덧글 야그를 보면서, 얼마전 '여성전용선거구'제에 대해 써 보았던 토론글 하나를 되씹어 보았습니다. 미디어다음 총선토론방에 올렸던 글인데..

"진의가 무엇이냐"는 참 못된 질문이죠. 발언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진정성을 확인하는 게니까, 발언한 사람에 대한 근본적 신뢰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진의가 무엇이냐" 되묻게 만드는, 궤변과 위선이 난무하는 세상이 야속하네요..흑흑 ㅠㅠ

"쓰레기"에서 "해방구"까지 평가가 천차만별이지만, 인터넷의 매력은 "위선이 없기 떄문" 이라고 믿는 저로서는, 국회의 여성전용선거구제와 관련한 논의나 누드 프로젝트나 그게 그걸로 보이네요. 쩝..


------------------
나는 여성이다.

그렇지만, 여성전용선거구 제도에 반대한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기 때문"이라는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역차별이기 때문에 이 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사회구조적, 문화적 모순과 폭력은 "무차별" 하에서는 약자가 도저히 기득권에 맞설 수 없는 상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차별이다, 무차별이다'라는 논리는 맞지 않다. 불공정한 제도, 차별/역차별의 부작용을 무릅쓰고서라도 소수자, 약자들의 입장을 개선해야 하는가 아닌가로 논점이 바뀌어져야 한다. 어떤 때에는 '역차별'이 전체 사회의 공정함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전용선거구제 도입에 대해 나는 반대한다.

우선, 여성전용선거구제는 여권(女權) 개선을 위한 대책이 아니다. 설혹 여성전용선거구제를 통해 여성의 국회 진출이 많아진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여권은 신장되지 않는다. OECD 보고서에 "고위급에 진출한 여성이 늘었다"라는 문구를 하나 올릴 수 있을 지 몰라도. 그보다 시급한 것은 우리나라에 정당 정치, 정책 정치가 바로 서는 것이다.

여성 국회의원이 많으면 '호주제'가 관철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목소리 큰 이해집단, 돈 많은 이익 세력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우리나라의 정당은 몇 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늘었다고 해서 고질적인 논리를 바꾸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여권과 관련한 논리의 빈약함은, 사회 전체적으로 목소리가 약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지위를 반영한다. 이 여성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잇는 방안이 필요하지, 지저분한 정치판에서 부화뇌동하는 또 한명의 여성 정치인은 원치 않는다.

정당이 정당의 소신을 바로 세우고, 그 소신 하에, 여성들이 논리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정책 비전을 내세우는 것이 먼저다. 여성의 국회 진출이 사회 내의 여권 신장을 가져오지 않는다.

두번째, 이 제도가 도입된 과정에 대한 불신이다. 진의가 의심스럽다. 최근 정치판의 행태는 정치인이야 말로 특권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이해집단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게 한다. "의석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 '약자 보호'의 궁색한 논리를 갖다붙인 것 같다.

정치는 논리를 통해 한 나라와 제도의 명분을 정당화하는 과정이다. 결과가 동기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멀고 더 어려운 길이 있어도, 그 길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정당하고 공정해야 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어느 정당에서 여권 신장에 그리 관심이 많았나. 큰 기업 눈치를 보고, 언론에게 아부하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나팔꾼들에게 관심을 기울일지언정,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희생자인 여성, 블루 칼라 노동자, 장애인, 어린이 등에 대해 소신을 펼친 정당이 어디에 있었나.

총선을 코앞에 둔 이 시기에, 지금까지는 관심도 없던 여권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의석 늘리기, 여성유권자 관심 끌기에 나서는 것은 환영할 수 없다. 역차별은 정당할 수 있지만, 불순한 동기는 절대로 정당할 수 없다. 여성전용선거구제를 부르짖으려면, 수개월 수년에 걸쳐 여성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점을 고안하는 제스츄어라도 보인 뒤에 하라.

나는 여성이지만, 여성전용선거구제 논의에 오히려 모욕을 느낀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episode.or.kr/yonnie41/trackback/11

Write a comment